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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탕가 요가

아쉬탕가의 8가지 단계 - 야마 (1) : 아힘사, 사트야

파탄잘리의 아쉬탕가 요가의 8가지 단계에 대해 세세하게 이야기 나눠볼게요

 

파탄잘리의 아쉬탕가 요가는 야마, 니야마, 아사나, 프라나야마, 프라티아하라, 다라나, 디아나, 사마디 이런 단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가장 첫 번째 단계인 야마에 대한 이야기 나눠볼게요

 

 

야마

 

“야마는 장소, 시간, 계급의 구애를 받지 않는 위대하고 강력한 보편적 서약이다.’

-파탄잘리 요가수트라 2장 31절-

 

 

야마는 (야마돈다 할 때 그 야마 아님) 보편적 도덕률이다. 

야마에는 아힘사, 사트야, 아스테야, 브라마차리아, 아파리그라하 라는 다섯 가지 원칙이 있다.

 

야마를 이루는 이 다섯 가지의 원칙들은 출신이나 상황과 관계없이 누구나 지켜야 한다.

야마는 사회가 밑바탕으로 삼아야 하는 규칙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다.

 

 

아힘사 Ahimsa

 

‘말, 생각, 행동에 비폭력이 확고히 자리 잡으면 공격적인 본성이 사라져 타인도 그의 존재에 더 이상 적의를 품지 않는다 .’

-파탄잘리 요가수트라 2장 35절-

 

 

아힘사는 폭력을 뜻하는 힘사에 부정어 아 를 붙여낸 말로 비폭력이라는 뜻이다.

아힘사의 원칙에 따르면 언제 어떠한 이유, 형태로든 말이나 생각, 행동으로 동물을 비롯한 모든 존재에게 그 누구에게도 폭력을 행하지 않아야 한다.

 

육식한다고 해서 그가 폭력적이고, 채식한다 해서 그가 평화주의자인 것은 아니다. 

폭력은 먹거리가 아닌 마음의 상태에 있는 것이다.

 

육식을 좋아하는 자가 강제로 채식하며 괴로워한다면 그것 또한 자신에 대한 폭력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으니 강제로 하지는 말되, 채식해도 괴롭지는 않지만, 육식의 즐거움의 크기가 더 커서 육식하면서 아힘사를 방패 삼아 핑계를 대지는 말자! 

 

아무래도 업, 카르마가 있기 때문에 남에게 행하는 폭력은 언젠가 나에게 되돌아오게 되어있다.

 

남을 해치는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되면 점점 그 부정적인 기운이 나에게 쌓이게 될 것이고, 본인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에 빠진다면 자학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남에게 독한 말로 상처를 입힌다면 언젠가 그 말이 부메랑이 되어 나에게 돌아와 비수로 꽂힐 것이다.

 

남에게 폭력을 행한다면 그 폭력은 같은 형태로 돌아오지 않더라도 폭력적인 사람이라는 인식과 소문이 자신을 괴롭힐 것이다.

 

남의 소문에 대해 뒷담화하고 다닌다면 언젠가 남의 뒷말을 하고 다닌다는 본인의 뒷말을 듣게 될 것이다.

 

물론 아힘사의 원칙을 철저하게 따르기엔 이 세상은 너무 더럽고 치졸하며 살기 팍팍한 게 맞기에 저 위에 모든 것을 하지 않고 살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남의 업장에 가서 무례하게 행동한다든지, 이유가 없는 시비를 건다든지, 약한 존재를 괴롭힌다든지 등의 범죄 혹은 범죄에 가까운 행위는 되도록 안 하며 사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세상이 생각보다 좁아서 한, 두 다리만 걸치면 다 아는 사이기 때문에 최대한 조심하며 살아가는 게 앞으로의 인생에 좋을 것 같다.

 

남에게 행하는 폭력은 나에게 행하는 폭력과 같다.

 

 

사트야 Satya

 

‘수행자가 진실성을 함양하는 수련을 확립하면, 그의 말은 지극히 큰 힘을 갖게 되어 그가 하는 말은 무엇이든 실현된다.’

-파탄잘리 요가수트라 2장 36절-

 

 

사트야는 진실성, 진정함을 뜻한다.

 

우리가 살아가며 하는 생각과 말, 행동이 모두 진실해야 한다.

 

사트야는 우리의 삶에 있는 도덕규범 중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

마하트마 간디는 진실은 신이고 신은 곧 진실이라는 말을 했다. 

 

불로 금의 불순물을 태워 순수한 금을 얻어내는 것처럼 진실이라는 불로 나의 내면의 불순물을 태우고 스스로를 정제해야 한다고 한다.

 

나는 언제나 사트야를 생각하면 매트릭스의 알약이 떠오른다. 

고통스러운 진실을 택할 것인지, 혹은 안락하고 편안한 거짓을 택할 것인지.

 

(당연히 저는 후자예요 ㅎ)

 

사트야를 지키기 위해 남에게 고통스러운 진실을 알려주는 것이 좋은 것일까? 그것은 아힘사에 위배되는 게 아닐까?

 

그렇다고 선의의 거짓말을 하기엔 사트야에 위배되는 행위이다.

 

과연 고통스러운 진실과 안락한 거짓 둘 중 무엇을 택해야 좋을까?

 

파다비 조이스의 요가 말라 책을 보면 

 

사트야에서 말하는 진실은 언제나 다른 사람을 기분 좋게 해줘야 하며, 다른 사람을 불쾌하게 만들 진실은 입 밖에 내지 말아야 한다고 나와 있다.

 

하지만 그 진실을 알 당시에는 괴롭고 불쾌하겠지만 알지 못했을 때의 미래가 더 안 좋다면 말해주는 게 맞을까? 아니면 당장의 고통과 불쾌감을 주지 않기 위한 거짓이 나을까 고민하게 된다.

 

내가 내린 결론은 (물론 그저 내가 스스로 읽고 느낀 해석이지만) 진실을 말하지도, 거짓을 말하지도 않은 침묵이 해답인 것 같다.

 

요가디피카에서도 말을 삼가서 할 수 있는 능력은 모든 악의를 뿌리째 뽑아버리게 하며, 자신의 혀를 조절 하는 법을 배운 이는 상당한 수준까지 자기 조절이 가능하다고 한다.

 

역시 침묵의 힘! 언제나 입이 방정인 나는 더욱 명심해야 할 것 같다.

 

오래전부터 많은 사람이 입을 닫고 귀를 열라고 하는 이유가 분명히 여기에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인생을 살며 거짓말을 안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다. 

 

언제나 진실한 사람은 모든 말에 힘이 있다고 한다. 그의 말은 진실이기에 듣는 사람들은 그의 말을 귀 기울여 듣고 인정하게 된다. 

 

매일 거짓말을 일삼는다면 뭐,,,, 그땐 나도 양치기 소년이 되는거여,,,,,

 

어찌되었건 거짓말 많이 하면 나중에 죽어서 발설지옥으로 끌려간다는데,, 혀에 소가 쟁기질한다는데 엄청 아플 것 같으니까 모두 거짓말하지 맙시다.

 

그럼 나머지 아스테야, 브라마차리야, 아파리그라하는 다음 포스팅에서 이야기 나눠보기로 하며 여기서 마무리 할게요.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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